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_더글라스 애덤스
p109
사실, 오글라룬 사람들 중에서 그 나무를 떠나는 이는 가증스러운 범죄를 저질러서 내동댕이쳐진 사람들뿐이다. 그 범죄란, 다른 나무에서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혹은 다른 나무들은 진짜로 오글라 호두를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환영에 불과할까 하고 궁금해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가 굉장히 기이하게 보일지 몰라도, 은하계의 모든 생명체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와 같은 죄를 저지른다. 바로 그 때문에 '모든 관점 보텍스'가 그처럼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보텍스 안에 넣어지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무한한 창조물 전체를 한순간에 다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 어딘가에 아주 작은 표시가, 즉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작은 점 위에 다시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작은 점이 있는데, 거기에는 '너는 여기 있다'라고 쓰여 있는 것이다.
p290
사람들을 통치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문제는ㅡ물론 중요한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그중 '하나'는ㅡ누구에게 통치하는 일을 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아니면, 누가 사람들이 그 일을 스스로 저지르도록 조종하고 있냐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을 통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사실상 그 일에 가장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요약을 다시 한번 요약하자면, 스스로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일을 수행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 요약에 대한 이 요약을 다시 요약하자면, 문제는 사람들이다.
p302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대단히 확신하는 군요." 그 사람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난 우주를ㅡ그런 게 정말 있다면 말입니다ㅡ그렇게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을 믿을 수가 없어요."
자니우프는 여전히 몸을 떨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난 나의 우주에 대해서만 결정을 내리죠." 그 사람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내 우주는 나의 눈이고 귀예요. 그 외의 것들은 소문에 불과하죠."
"그럼 당신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 사람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당신이 말하는 걸 이해 못하겠군요." 그가 말했다.
"당신이 이 오두막 안에서 결정하는 일들이 수백만 사람들의 생명과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해 못한단 말이에요? 이건 정말 어마어마하게 잘못된 일이라고요!"
"모르겠군요. 당신이 말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만나본 일도 없는 걸요. 그리고 내 생각에 당신도 안 만나봤을 거예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듣는 말 속에서만 존재하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당신이 안다고 말한다면 그건 잘못이에요. 그 사람들만이 알죠. 그 사람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말이에요. 그 사람들도 눈과 귀라는 자신들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읽은 날: 2021.04.02.~2021.04.03.
책모임: 2021.04.04.
책을 읽으면서 계속 어딘가 닥터후의 냄새가 난다 했는데, 찾아보니 작가님 닥터후 덕후였나보다. 그리고 대본 편집자였던 시즌도 있고, 직접 각본 쓴 에피도 몇 개 있나봄. (내가 닥터후를 본 건 9대 에클닥부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닥터후를 느꼈다는 것은 역시 닥터후가 대단하다는 뜻인 걸까? 옛날 시리즈와 지금 시리즈 사이의 꽤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니!)
2권까지 읽으면서 깨달은 바는, 이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주의깊게 읽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게 먼소리여..' 싶어도 그냥 쭉 읽다보면 '아 이말이구만~' 하게 된다.
정신없기는 1권과 다를바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대충 흐름을 알겠다. 5권까지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 없는 희망이 샘솟고 있어.
그리고 책장 사이사이 넘쳐흐르는 블랙유머 좋습니다 ㅋㅋㅋ 이것이 영국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