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 하정우_하정우
p78
죽을 만큼 힘든 사점을 넘어 계속 걸으면, 결국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조금 더 걸을 수 있다.
p114
내가 걷기를 통해 내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오랫동안 연기하고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어느 날에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또 어떤 날에는 나 자신에게 너무도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결과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작업해나가는 것이다.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작업하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p149
내 컨디션이 좋고 여러 조건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을 때 비로소 걷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내가 정말 바닥을 기는 최악의 상황이 왔을 때도 관성처럼, 습관처럼 걷기 위해 나는 오늘도 걷는다.
p150
한 발만 떼면 걸어진다.
p177
말에는 힘이 있다. 이는 혼잣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결국 내 귀로 다시 들어온다. 세상에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은 없다. 말로 내뱉어져 공중에 퍼지는 순간 그 말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비난에는 다른 사람을 찌르는 힘이, 칭찬에는 누군가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말을 최대한 세심하게 골라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내보내야 한다.
p215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시간을 쌓아가는 것뿐이다. 나는 내가 지나온 여정과 시간에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지만, 결코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는다. 어쩌면 확신은 나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오만과 교만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269
보통 '노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능한 한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여서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는 모습이 상상된다. 하지만 노력은 그 방향과 방법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다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
p272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기와 절망 속에 있을 때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때로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노력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한다. 어쩌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도 모른 채 힘든 시간을 그저 견디고만 있는 것을 노력이라 착각하진 않는지 가늠해본다.
(중략)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곧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혹시 내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닌지 수시로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p273
작업은, 작품은 정직하다. 몸을 움직인 만큼 정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걷기처럼, 작품과 작업도 결코 '야료'를 부리지 않는다.
나는 그 정직성을 믿는다.
p278
살면서 불행한 일을 맞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이란 어쩌면 누구나 겪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에서 누가 얼만큼 빨리 벗어나느냐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사고를 당하고 아픔을 겪고 상처받고 슬퍼한다.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상태에 오래 머물면 어떤 사건이 혹은 어떤 사람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지경에 빠진다. 결국 그 늪에서 얼만큼 빨리 탈출하느냐, 언제 괜찮아지느냐, 과연 회복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든 지속하는 걷기, 직접 요리해서 밥 먹기 같은 일상의 소소한 행위가 나를 이 늪에서 건져내준다고 믿는다.
읽은 날: 2021. 07. 18.
나도 걷는 걸 좋아하고, 최근엔 저녁 먹고 '동네 걷기'를 하고 있지만, 뭔가 이분은 정말로 '걷기에 진심이구나!' 싶다(물론 나도 진심이다).
책 읽다가 자극받아서 나도 내 걷기 코스를 조금 늘렸다 하하하
요즘 좀 여유가 있어서 나중에 힘든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믿을 구석을 하나 만들어 두려고 걷기를 시작했다. 걷는 습관을 만들어 두면 언젠가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저 걸을 수만 있으면 나는 괜찮을 것 같아서. (체력이 너무 떨어진 것 같아서도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다. 나이 먹어가면서 체력이 부족해서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되는 경우를 맞이하고 싶지 않아...!!)
아무튼, 열심히 걸어보자는 의지에 기름을 끼얹어 주었다. 고맙습니다 ㅎㅎ
최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상이 생각보다 대충 굴러가는 것 같다는, 굳이 열심히 살 필요가 있느냐 하는.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었는가 하면, 열심히 살아온 건 맞지만 그렇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견디지 말아야 할 것을 견디면서 나는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왜 이것밖에 안 되냐고 울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사실은 조금만 둘러봐도 매일 매 순간 너무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으니까, 냉소는 일단 넣어두고 나도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앞으로 살 날이 창창한데 해봤자 무슨 소용이냐고 그 아까운 날들을 다 보낼 수는 없는걸.
일단 걸어 보고, 혹시 잘못 갔으면 다시 길 찾아 가면 되는거 아니겠어요! (긍정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