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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

'닥치는 대로' 산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원망할 수 없다. 세상은 제 갈 길을 가고, 사람들은 또 저마다 자기 삶을 살 뿐이다. 세상이,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소망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해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세상을 비난하고 남을 원망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극적 선택도 선택인 만큼, 성공이든 실패든 내 인생은 내 책임이다. 그 책임을 타인과 세상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죄악과 비천함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악당이나 괴물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훌륭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되든, 무엇을 이루든, '자기 결정권' 또는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는 인생을 살아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p52

정직하게 말하면,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에게 타인의 위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도 개선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지 삶의 환경을 조금 덜 냉혹하게 만들 뿐, 그 자체가 내 삶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

 

p56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p104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잊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이다. 살아 있는 동안,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철학적 자아가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무엇을 할 때 살아 있음을 황홀하게 느끼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인가? 내 삶은 나에게 충분한 의미가 있는가?'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인생의 의미도 삶의 존엄도 없는 것이다.

 

p144

라몬 삼페드로가 죽으려고 한 것은 고통, 절망 또는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사지마비 장애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사지마비 장애는 자유를 박탈했다. 라몬은 자유 없는 삶은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꼈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 칸트의 도덕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성한 것은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의 존엄성이며 자유로운 판단에 따라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삶의 의미는 살고 사랑하고 죽을 자유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도덕과 법률의 권위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의 뜻을 구현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p156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 밥을 먹기는 먹어야 한다. 밥을 먹으려면 어디엔가 쓸모가 있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 분업사회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계를 타인의 자비심에 의존하면 존엄한 삶을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p178

소통과 인간관계의 비결은 자기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타인을 미워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섣불리 평가하려 하기보다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교감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바꾸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대한다. 이것이 재미있는 일을 즐겁게 하는 비결이다.

 

p182

그런데 박 이사장은 국회의원을 한 분이라 그런지 나를 보좌관처럼 대했다. 외부 손님과 식사 약속이 있거나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들을 만날 때 자꾸 데리고 다니려고 했다. 그것이 열심히 일하는 나에 대한 그분 나름의 애정 표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훌륭한 학자이지만 그분을 내 보스로 모시려고 취직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재단의 간부들은 이사장을 깍듯이 모셨다. 나는 그들을 외국으로 연수를 보내거나 공로 휴가를 주어 일에서 손을 떼게 해야 재단 업무가 비로소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단 업무 혁신을 추진하면서 그 사람들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다. 필요하고 옳은 일을 하는 것만 생각했을 뿐, 그 일을 친절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뢰를 받지 못했고 일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좋은 혁신 아이디어와 제도 개선책을 만든다고 해서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혁신의 동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옳은 개혁도 실패한다. 훗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과 참여정부 국무위원으로 일하면서 나는 똑같은 실패를 다시 겪었다.

 

p205

갑작스럽게 찾아든 영원한 이별에 대한 상상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색깔과 맛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럴 때 사랑은 싹 난 감자처럼 아린 맛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와의 영원한 작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리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깊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운이 좋아서 비행기가 어느 바닷가 넓은 백사장에 성공적으로 불시착했다고 상상하자. 그 사람에게 무엇을 꼭 해주고 싶은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고 싶다는 그 생각과 느낌을 마음에 새기자. 비행기는 틀림없이 공항 활주로에 안전하게 착륙할 것이다. 비행기 사고는 일단 일어나면 치명적이지만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자동차 사고로 죽을 확률과는 비교가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낮다. 영원한 이별의 상상이 가슴 찢어지게 아린 맛을 주는 그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대로를 하라. 그것이 좋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p218

제대로 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은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을 느끼게 된다.

 

p232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은 그 후보가 패할 가능성까지 함께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p238

국가권력의 본질은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폭력이다.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폭력이라 할지라도, 폭력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거나 마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폭력을 선용함으로써 사람들이 저마다 원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p269

신념에 따른 삶과 죽음이 훌륭하려면 먼저 그 신념이 훌륭해야 한다. 신념 자체가 훌륭하지 않으면 그 신념을 따르는 삶도 훌륭할 수 없다. 그런데 신념이란 어디까지나 머리에 든 생각이다. 어떤 신념도 완벽하게 옳다거나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완전히 잘못되었거나 사악하다고 단정할 수 있는 신념도 흔치는 않다. 사상이나 이념, 가치관은 완전하지도 않으며 고정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때로 신념을 버리기도 하고 바꾸기도 한다. 훌륭하게 살기 위해서는 훌륭한 신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신념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 신념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신념이 잘못된 것이 아닌 경우에도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잘못 선택하면 삶이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 토끼님의 후기 https://blog.naver.com/slimekyo/2224361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