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78 죽을 만큼 힘든 사점을 넘어 계속 걸으면, 결국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조금 더 걸을 수 있다. p114 내가 걷기를 통해 내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오랫동안 연기하고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어느 날에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또 어떤 날에는 나 자신에게 너무도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결과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작업해나가는 것이다.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작업하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p149 내 컨디션이 좋고 여러 조건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을 때 비로소 걷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내가 정말 바닥을 기는 최악의 상황이 왔을 때도 ..
p18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 거야." 그러자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p28 어린이의 '부풀리기'는 하나의 선언이다. '여기까지 자라겠다'고 하는 선언. p41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
p235 우리는 흔히 성공에 대해 한 가지 요소만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중요한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들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p357 나의 주된 두 가지 결론은, 기술이란 어느 영웅의 개별적인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누적된 행동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 그리고 기술이란 대개 어떤 필요를 미리 내다보고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된 이후에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는 것이다. p360 타이핑된 문서라면 거의 다 그렇듯이 이 책도 역시 '쿼티QWERTY 자판(윗줄 왼쪽의 여섯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타이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 같은 자판 배열은 1873년에 역공학의 산물로 태어났다. 즉, 온갖 수단을 다발휘하여 타..
p25 항상 '인생은 레벨 업이 아니라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라고 믿는데, 옛날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레벨 업한 버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옛날의 나로부터 지금의 나까지를 모두 다 품은 내가 더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는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더 넓어진 나야말로 더 나아진 나일지도 모른다. p85 아무리 이타적이고 겸손한 사람이라 해도 두뇌의 저 깊숙한 곳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둔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객관화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해도 내가 한 몫이 더 커 보인다. 나는 내가 한 부분의 모든 디테일과 그에 들인 시간과 매 순간의 판단 과정을 전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이 한 부분에 대해서 더 열심히 보려는 노력을 해야만 비로소 형평에 맞는다. p..
p84 삶은 집에 깃들지 않는다. 저녁에 들어가서 눕는 집이 지금의 내 삶에 하루하루 스며들어 간다. p91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다다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변화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송두리째 곤두박질치는 재난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막상 정말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 심란함은 해가 쨍쨍한 날 장우산을 들고나온 사람 같은 무색함으로 바뀌었다.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들고 걸어가다, 나처럼 우산을 든 다른 사람과 마주치면 '꼭 비 올 것처럼 그러더니, 그렇죠?' 하고 멋쩍게 웃기도 하면서. p101 삶의 장면들은 결코 책장 넘기듯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끝난 줄 알았던 기다란 문장이 다음 장에도 몇 줄씩 꾸역꾸역 이어져서 당황하는 것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진짜 시작이다. ..
p55 조그마한 플라스틱 렌즈를 눈에 살살 집어넣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가방을 가지러 되돌아가서는 안 되는 때가 있고 그래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하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p141 "자넨 자네가 보는 걸 보기 때문에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없어. 자넨 자네가 아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을 알 수 없어. 내가 보고 내가 아는 것은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에 보태질 수가 없어. 왜냐하면 같은 게 아니니까. 그건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을 대신할 수도 없어. 왜냐하면 그건 자네 자신을 대신하는게 될 테니까." (중략) "자네가 어떤 식으로든 보거나 듣거나 경험하는 것은 모두 자네하고 상관있어. 자넨 우주를 인식함으로써..
p231 "여기 말이오." 정신 멀쩡한 웡코가 말했다. "우리는 지금 정신병원 바깥에 있는 거라오." 그는 다시 거친 벽돌, 산뜻한 마감재 그리고 물받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문을 지나면......" 그는 그들이 처음 들어왔던 문을 가리켰다.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환자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예쁘게 인테리어를 했지만, 사실 다 구제 불능이라 별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오. 나는 절대 저 속으로 들어가지 않지.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느끼면, 요즘은 물론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그냥 문에 달려 있는 안내문을 읽으면, 금세 마음이 약해져서 또 못 들어가곤 해요." "저 안내문 말인가요?" 펜처치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뭐라고 지시문들이 쓰여 있는 파란 명판을 가리켰다. "그래..
p49 "SEP라는 건, 우리가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는, 아니 우리 뇌가 못 보게 하는 광경이야. 왜냐하면 다른 사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SEP의 뜻이 그거야. '다른 사람의 문제'. 뇌가 그 부분을 편집해 잘라내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맹점 같은 거라고.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는 경우에는, 똑바로 쳐다보면 보이지 않아. 유일한 희망은 곁눈질로 어쩌다 재수좋게 힐끗 보게 되는 거지." p60 '다른 사람의 문제' 자장은 훨씬 간단하고 효율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손전등 배터리 하나로 백 년 넘게 작동시킬수 있었다. 이 기술은, 보고 싶지 않은 것, 예기치 못한 것, 그리고 해명할 수 없는 것은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타고난 성향에 의존하고 있었다. 에프라팍스가 산을 분홍색으로 칠한 뒤에..
p33 고빈다가 말하였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어, 싯다르타, 그리고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이 있네. 우리는 쳇바퀴처럼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위를 향하여 올라가고 있는 거야. 그 바퀴는 둥근 원이 아니라 나선형이고, 우리는 이미 많은 단계들을 거쳐온 거야.」 p56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 대하여서만, 오로지 나에 대해서만, 저는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p63 의의와 본질은 사물들의 배후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들 속에, 삼라만상 속에 있었던 것이다. p153 바주데바는 매우 주의 깊게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는 싯다르타가 이야기하는 내력..
p109 사실, 오글라룬 사람들 중에서 그 나무를 떠나는 이는 가증스러운 범죄를 저질러서 내동댕이쳐진 사람들뿐이다. 그 범죄란, 다른 나무에서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혹은 다른 나무들은 진짜로 오글라 호두를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환영에 불과할까 하고 궁금해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가 굉장히 기이하게 보일지 몰라도, 은하계의 모든 생명체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와 같은 죄를 저지른다. 바로 그 때문에 '모든 관점 보텍스'가 그처럼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보텍스 안에 넣어지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무한한 창조물 전체를 한순간에 다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 어딘가에 아주 작은 표시가, 즉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작은 점 위에 다시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작은 점이 있는데, 거기에는 '너는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