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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7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나갔을 때 "낯을 가립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돌연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것이 마치 병인 듯, 도저히 손쓸 방법이 없는 일처럼 말하는 스스로에게 약간 화가 났다. 

그때까지 상대에게 사랑받고 싶다,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소통하기를 포기했다. 소통에 실패해 버리면 거기에서 인간관계를 배우고 성장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그걸 상대에게 "낯을 가려서......."라고 마치 피해자인 양 말하는 것은 "나는 소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인간이니 그쪽에서 조심하쇼."라고 대놓고 낯부끄러운 선언을 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몇 년 전부터 낯을 가린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마음의 문을 늘 활짝 열어 두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아한다고 알리고자 했다. 성가셔 하고 싫어해도 상대가 좋으면 그런 마음가짐만큼은 관두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언젠가 어린 시절에 "너 왜 이렇게 귀찮게 굴어?"라는 말을 듣고서 타인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내 성격을 일그러트리고, 아예 인간을 좋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사실을. 하지만 나는 사람을, 사람과 만나는 일을 몹시도 좋아한다.

일부러 외톨이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원래 누구든 인간이라면 혼자이기에 우리는 더욱 손을 잡고 열렬히 소통을 해야 한다.

 

p250

십 년 정도 꾸준히 에세이를 쓰면서 깨달은 바는 문장 전문가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인간에게는 전달 욕구가 있으며 그 안에는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문장을 구사할 때는 "이걸 전달함으로써 이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하는 자기 인정 욕구에서 기인한 에고와 나르시시즘의 과잉이 일어나기 쉽고, 음악도 그러하지만 표현과 타인에게 전하고 싶다는 바람에는 늘 불순물이 따릅니다. 그것과 싸우며 한도 끝도 없이 덜어 내는 작업이야말로 아마추어에게는 특히 어려우며, 프로 중의 프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양한 책을 읽은 지금에야 겨우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가 경력과 관계없이 문장력을, 자신의 욕망을 발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에고와 나르시시즘을 없애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읽은 날: 2021. 12. 08.

 

어느 날 뜬금없이 일본 드라마를 보기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무심코 본 만화가 재밌어서 실사화 한 드라마를 보다가, 거기 나온 배우가 좋아서 그 배우의 다른 필모를 보다가, 다른 배우한테 꽂혀서 또 그 배우의 필모를 보다가, '그럼 이것도 재미있을 걸'하는 드라마를 보다가, '같은 세계관이래'하는 드라마를 보다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매력이 있군' 싶은 배우를 봤는데, 이 배우가 가수더라는 것을 알게 돼서 노래를 들어보다가, 글도 쓰는데 책이 우리나라에도 번역서가 있다길래 그만.

 

책은 가볍게 금방 읽었고, 재미있었다. 피식피식 웃었고, '나도 그런데!' 하기도 했고.

그리고 뭐랄까, 큰 일을 겪고 난 뒤에 솔직해진 사람의 기운? 이건 그냥 내 편견이 그렇게 본 걸 수도 있지만.

 

아참, 드라마에서 같이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를 애정이 뚝뚝 묻어나게 엄청 칭찬하는 글이 있었는데, 올해 결혼발표를 했나보더라.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