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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디저트를 좋아하여 디저트를 찾아다니며 먹는 모임을 만든 남자 어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누군가 발췌해 놓은 그 부분만 읽어서 이런 엄숙한 제목을 가진 책을 쓰는 사람일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는데. 편견이란... 

하지만 책을 읽는 중 많은 시간을 웃느라 정신이 없었고, 에필로그를 읽으며 "미쳤나봐"를 연발하고 나니 '과연 만화책을 좋아하고,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러 다니며, 미술관까지 섭렵하는 남자 어른이구나' 싶었다. 역시 편견이란..

 

죽음은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온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결심한 것은 할 수 있을 때 하고 볼 수 있을 때 보자는 것이다. 특히 사람 사이의 일에서는 되도록이면 미루지 않으려고 한다. 예전에는 밤이 늦어서, 할 일이 있어서, 귀찮아서 다음에 보자고 했지만, 그 '다음'이라는건 공평하지가 않아서 나의 '다음'과 상대방의 '다음'이 만날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며, 이미 죽어있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나에게 아직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행복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고, 성장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고, 본질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데 정말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나도 모르겠어서 몇 번을 썼다 지웠는지 모르겠다. 모를때는 모른다고 말해야지. 

 

여튼,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고, 주위에도 권하고 싶다.

1.7회정도 읽었는데(대략 70%정도 읽고 다시 처음부터 읽었음) 가끔 들춰보고 싶은 책이다.

 

뻘소리.

'OO은/는 무엇인가'라는 제목들이 유난히 눈에 띄어 존재의 근원 혹은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즐기시는 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철학을 하여 근본을 탐구하시는 것인가..? 여튼 문답법을 좋아하시는가 싶다.

 

 

 

 

P23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P37

시야의 확대가 따르지 않는 성장은 진정한 성장이 아니다. 확대된 시야 없이는 상처를 심미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할 수 없다. 동시에 아무리 심미적 거리를 유지해도 상처가 없으면 향유할 대상 자체가 없다. 상처가 없다면,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 용기가 없어 망설이다가 끝낸 인생에 불과하다. 태어난 이상, 성장할 수밖에 없고, 성장 과정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제대로 된 성장은 보다 넓은 시야와 거리를 선물하기에, 우리는 상처를 입어도 그 상처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P189

악이 너무도 뻔뻔할 경우, 그 악의 비판자들은 쉽게 타락하곤 한다. 자신들은 저 정도로 뻔뻔한 악은 아니라는 사실에 쉽게 안도하고, 스스로를 쉽사리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악과 악의 비판자는 일종의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때로 악을 요청한다. 상대가 나쁘면 나쁘다고 생각할수록 비판하는 자신은 너무나 쉽게 좋은 사람이 된다.

 

P201

어떠한 밥그릇도 이고 있지 않은 채 흰빛만을 받고 있는 그 낡은 소반들은, 이제 자신들이 속해 있던 고된 노역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고양된 의미를 가진 오브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소반이 그 자체로서 가지고 있었던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전시기획자들의 안목을 통해 창조된 아름다움이다. 어떤 대상도 그것이 적절히 전시되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입을 수 없고 어떻게 전시되느냐에 따라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 발생한다. 관람자가 체험한 것은 소반의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소반 전시의 아름다움이다.

 

P276

<양들의 침묵>이나 <한니발>에서 역시 우리가 가장 저열한 인간형을 발견하는 것은 식인 살인마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선의 이름으로 한니발을 쫓는 공권력 안에서다. 즉 우리는 선을 보아야 할 장소에서 피곤하도록 악을 보아왔다. 한니발이라는 캐릭터의 궁극적인 매혹은, 정반대로 악의 정수에서 어떤 형태의 선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피곤함을 치유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하여, 현실의 피곤한 아이러니는 영화 속에서 정반대의 아이러니에 의해 구제받는다.

 

 

 

마지막으로 곧 다가올 추석을 생각하며, 그 유명한 '추석이란 무엇인가'의 일부(P61)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하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아버지가 "손주라도 한 명 안겨다오"라고 하거든 "후손이란 무엇인가?". "늘그막에 외로워서 그런단다"라고 하거든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가족끼리 이런 이야기도 못 하니?"라고 하거든 "가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 책 같이 읽은 토끼의 후기

https://blog.naver.com/slimekyo/222436096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