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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4

"코드를 좀 멀리서 보면 어때요?"

케빈이 말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자기가 짠 코드랑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덧붙였다.

"버그는, 그냥 버그죠. 버그가 케빈을 갉아먹는 건 아니니까."

 

p.231

아주 오래전에 저곳에 엽서가 붙어 있었다는 걸, 테이프 위의 얇은 종이 찌꺼기가 말해주었다. 아무렇게나 찢겨 남겨진 종이는 때가 타서 새카매졌고 테이프는 접착력이 거의 다해 너덜거렸지만, 어쨌든 여태 그곳에 붙어있었다. 나는 테이프 위에 남은 꼬질꼬질한 종이의 흔적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후회하는 몇가지 중 하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애써 다 털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내 안 어딘가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고, 떼어내도 끈적이며 남아 있는, 날 불편하게 만드는 그것. 내가 그것을 다시 꺼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꺼내서 마주하게 되더라도 차마 똑바로 바라보기는 힘들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토끼님의 후기 https://blog.naver.com/slimekyo/222436111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