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p30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력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p81

나는 좋아하는 록 밴드의 새 음반이 나올 때마다 언니에게 강제로 들려주며 "좋지? 좋지?"를 연발하곤 했다. 그러면 음악 취향이 나와 사뭇 다른 언니는 마지못해 몇 초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좋네" 짧게 한마디하며 수긍해주곤 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몰상식한 짓을 몇 년이나 반복하자 어느 날은 인제 그만 좀 하라며 버럭 화를 냈다. 아차, 내 감동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었지.

 

p82

그 모든 '우주적'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 삼십만 조각 퍼즐을 막 완성한 것과 같은 희열이 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제 막 첫번째 조각을 집어들었는데 누가 와서 여러 조각을 촤라락 맞춰주고 가면 내심 화가 나는 법이다. 나는 이 책을 두고두고 조금씩 읽을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읽어내려가기보다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대강의 틀을 기억해두었다가 유튜브에서 동영상 클립 보듯이 그때그때 발췌해서 읽을 것이다. 조언은 구할 때 해야 가치 있고 실효가 있는 것처럼, 우주의 아름다움도 다양한 지식을 접하며 스스로의 생각이 짜여나갈 때 불현듯 나를 덮쳐오리라.

 

p90

나이가 지긋한 과학자에게 무언가에 대해 질문하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알고는 있지만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도 모른다고 하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때도 모른다고 한다. 확답을 잘 하지 않고, 그럴 가능성이 높거나 낮다고만 한다. 우린 항상 잘 모른다. 자연은 늘 예외를 품고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이다.

 

p91

과학자들의 의심은 남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의심에 자기 자신이 가장 많이 습격당한다. 일찍이 철학자 데카르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했던가. 과학자들은 그 말을 아주 잘 실천하고 있다. 의심하는 것이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문제에도 다양한 각도에서 의심하고, 그 답을 구하려 애쓰며, 답을 찾은 뒤에도 과연 답이 하나뿐인지 또다른 측면에서의 답은 없는지 계속해서 의심하는 것, 그것이 과학자가 하는 일이며 해야 하는 일이다.

 

p103

나는 어느 여자 교수님을 혼자 몰래 존경하고 있다. 분야가 달라서 직접 뵙고 말씀 나눌 기회는 흔치 않았지만, 언젠가 그 학과 대학원생을 우연히 만나 "그 교수님 어떠세요?"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남초사회에서 자리잡은 여성 과학자는 언제나 호기심과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어떤 성향이실까, 연구 스타일은 어떨까, 강의는 어떻게 하실까, 요즘은 주로 뭘 연구하실까, 그런게 궁금했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대답은 "글쎄요. 애가 아프다고 학교 안 오실 때도 있고 그래요"였다. 내가 보기에는 정년을 앞두고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자신의 대학원생들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는 멋진 교수님인데, 고작 그런 시선이라니. 그것도 아직 젊은 대학원생의 시야가 그렇게 구태의연하다니 나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p141

언론은, 어쩌면 사람들은, 대단한 과학자를 집중 조명하고 싶어한다. 고난을 극복한 영우담에 빨리 감탄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과학자를 여럿 키워서 그중 한 사람이라도 대단해지는 과정을 지지하거나 지켜보는 것은 별로 인가 없는 모양이다. 세계적 과학자가 어디서 뿅 하고 갑자기 나타날 리 없는데.

 

p213

인생에도 '문제은행'이 있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삶은 뻔한 적이 없었다.

 

p221

달의 앞면에선 늘 지구가 보인다. 하늘의 어느 한쪽에 거대한 파란 보석 같은 지구가 떠 있다. 지구는 달보다 네 배나 크다. 다시 말하면 달에서 보는 지구는 우리가 지구에서 보는 달보다 네 배나 큰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지구가 떠 있는 하늘을 가질 수 있다니, 숨쉴 공기도 없고 먹을 유기물질도 없는 척박한 그곳으로 당장이라도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 든다. 게다가 달에서 보는 지구는 마치 선반에 올려놓은 오르골 장식품처럼 달 하늘 어딘가에 떠서 제자리에서 천천히 돈다. 낮에도 밤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지구의 위치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달에 집을 짓는다면 지구로 향하는 창을 낼 것이다. 창문이 곧 생동하는 액자가 될 테니.

 

p230

어린 시절, 태양계 행성의 이름 앞글자만 따서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순으로 외웠던 사람들에게 마지막의 '명'을 묵음으로 처리해야 하는 당혹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분명 행성이라고 배웠는데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지를 않나, 지구의 세차운동 때문에 황도 12궁이 13궁으로 변해서 생일 별자리가 바뀔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지를 않나, 하늘에 있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줄 알고 이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하며 갖은 맹세를 다 했건만 천상의 세계도 변한다니 이 무슨 변고인가.

 

p256

과학 논문에서는 항상 저자를 '우리we'라고 칭한다. 물론 과학 논문은 대부분 여러 공동연구자가 함께 내용을 채워넣기 때문에, 우리라고 쓰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학위논문이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의 저자는 당사자 한 명인데, 그래도 논문을 쓰는 저자를 자칭할 때 '우리'라고 하는 것이다. (...)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학위를 받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달에 사람을 보낸 것도 미항공우주국의 연구원이나 미국의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 인류인 것이다. 그토록 공들여 얻은 우주 탐사 자료를 전 인류와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은 그래서 당연하다.

 

 

 

 

읽은 날: 2021. 09. 14. / 2021. 12. 29.~30.

 

 

밤하늘에 빛나는 것은 인공위성이라는 말만 철썩같이 믿었던 우주무식자로 대부분의 인생을 살아왔으며 이제 막 화성 정도를 알아볼 수 있게 된 여전한 우주무식자에게 천문학자는 막연한 낭만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직업인으로서의 천문학자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주변에 별로 다양한 직업군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더 특별하고 희귀한 존재인 것만 같은 천문학자를 볼 일은 더더욱 없어서 그런가, 일상에서도 천문학자로서의 직업병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은 나올 때마다 다 재미있었다. 특히 아이가 유치원에서 어른이 되면 우주비행사가 되어 은하계를 여행할거라는 노래를 부를 때 그렇게 멀리까지 갈 거냐고 눈물을 글썽였다는 이야기는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라 웃어버리고 말았다. 

 

글을 잘 쓰셔서 천문학 이야기가 나올때에도 그다지 지루하지 않게 잘 읽은 것 같다. 전혀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아무래도 전문지식은 외계어나 다름없으니까? 그건 초급이든 고급이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냥 남의 분야는 다 어렵다.

무튼 천문학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천문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천문학을 하는 한 엄마로서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 그러고보니 저번 카페쇼에서 원두를 사온 가게 이름이 Astronomers Coffee인데. 그리고 내가 산 블렌드 이름은 Cosmic Dust. 난 천문학자의 커피가게에서 우주 먼지를 사온 것이다...! (설마 가게주인이 천문학자여서 나도 모르게 천문학자를 만나버린 건 아니겠지?)

아무 상관 없지만 뭔가 상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 그냥 써봤다. 커피는 맛있었다. 언젠가 홍대 갈 일이 생기면 매장에 가봐야지. 

 

 

 

 

아래 더보기는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에 대해 저자가 언급한 '최고의 우주인'의 한 부분이다. 

우주인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지라 뉴스를 대충 흘려들었던 탓에 막연하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우주인 이소연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조금 놀랐다. 당시 언론에서 보여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서. 물론 나의 무관심이 더해졌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아래 접은 글도 한 번 읽어봐주면 좋겠다는 마음에 옮겨보았다. 잘 알고 있었던 이야기일 수도, 아니면 어렴풋이 알았거나 관심없었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혹은 저자의 시선을 편파적으로 느낄 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냥 한 번은 읽어봐주었으면 하는 마음.

내용이 길어서 접어 둔다.

 

더보기

p95

어떤 사람들은 이소연을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전국민의 관심 속에 선발된 우주인이 갑자기 교체된 것도 당황스러운데다가, 여성 우주인이 앞으로 나서게 되는 것을 고까워하는 시선이 더해졌다. 여성 우주인이 남성 우주인 옆에 후보로 있다가 역사적인 발사의 순간에 손뼉 치며 환호해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고산이 이소연으로 교체된 사건은, 남자의 자리를 여자가 대신한다는 충격으로 퍼져나갔다. 이소연이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생명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우주정거장에서의 실험을 수행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전문가라는 점은 쉽게 무시되었다. 많은 사람이 놓쳤지만, 우주인 프로젝트의 명목상 목적은 우주정거장에서의 과학 실험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우주 실험을 수행할 사람이 마침 학계에서 과학 하던 사람이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운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우주정거장에서는 지구에서보다 얼굴이 붓는다. 다리 쪽으로 피를 잡아당겨주는 중력이 없는데도 심장은 지구에서의 제 역할을 다하려 하기 때문이다. 여성 우주인의 잔뜩 부은 얼굴을 두고 외모를 비하하는 댓글이 기사마다 달렸다. 이소연은 잠잘 시간도 아껴가며 열여덟 가지의 실험을 수행해냈고,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실험을 두고는 몇 날을 고민했다. 러시아 측에서 실험이 너무 많으니 줄이라고 요청할 정도로 무리한 일정이었다. 그런 일을 새내기 우주인이 완수해낸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목소리 높여 칭찬해주지 않았다.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올 때, 귀환 모듈의 결함으로 죽을 뻔했던 일이 한국 우주인의 영웅담으로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일도 없었다. 이소연이 탄 귀환 캡슐은 궤도를 이탈했고, 화염에 휩싸이는 바람에 통신조차 끊어진 채, 거의 수직으로 카자흐스탄의 평원에 메다꽂혔다. 예상 지점에서 수백 킬로미터나 벗어난 곳에 불시착했다. 당황한 그곳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귀환 캡슐에서 탈출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수 시간 동안 동료와 의지해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극적인 이야기는 영화와 드라마로 지겹도록 재생산되는 대신 누구도 넘겨보지 않은 책장처럼 홀로 바래갈 뿐이었다.

우주 비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소연은 수백 차례의 대중강연과 인터뷰를 하며 애초 계약했던 의무기간의 갑절 되는 동안 우주인으로서의 소임을 수행했다. 그러나 우주인 프로젝트는 일회성 사업이었고, 앞으로도 우주인 이소연이 할 만한 일은 11일간의 비행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우주에서 돌아온 후 4년간 그랬듯이. 그렇다고 몇 년 만에 다시 DNA를 다루는 공학박사 이소연의 길로 돌아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나가는 분야다. 수년간 손놓았던 사람이 다시 그 급류 속으로 들어가 안전하게 물살을 타는 일이 어디 쉬울까. 우주인 이소연이 할 수 있을 후속 프로젝트가 마련될 길은 요원해 보였다. 고민 끝에 휴직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자 이번에는 '먹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곳에서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했을 때도, 휴직 기간이 만료되고 마침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퇴사했을 때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심지어 '공립' 과학고등학교를 나와 '국립' 한국과학기술원을 졸업한 경력까지 문제가 되었다. '그 여자'를 고등학교때부터 박사과정까지 국가 세금으로 키워준 것이 괘씸하단다. 강연료를 챙기면서 출장비까지 받았으니 구상권이라도 청구해야 한다고 한다. 정말 그래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