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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생활 환경으로는 가혹하다는 의미입니다. 바다도 산도 숲도 강도 그것이 아름다울수록 일단 비위를 건드렸을 때에는 본색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혹독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그림 같은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p43

여하튼 나이만 먹어 가는 후반 인생을 시골에서 보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거의 야생동물의 최후 같은 죽음을, 말하자면 길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결의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

 

p75

시골 행정 관계자는 대부분 환경문제에 둔감합니다. 요즘 들어서야 아주 그럴싸한 말을 하지만 마음속은 그 반대입니다. 위험을 약간 감수하더라도 돈이 들어오면 그걸로 족하다는 것이 본심일 것입니다. 위험한 공장이나 업자를 끌어들여 그 떡고물을 물고 늘어지자 생각합니다. 지금이 좋으면 장래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너무나도 찰나적인 발상이 버젓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도시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적습니다.

 

p76

그런 심각하고 절실한 문제에 대해 주민들이 들고일어나 이의 신청을 하지 않는 것은, 놀라울 만큼 무지하다는 것 외에 있는 자와 어울리고 강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뼛속까지 사무쳐 있는 농경민족 특유의 근성 때문입니다. 그것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자세고, 그런 기강을 절대로 무너뜨려선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야말로 국민 정신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러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어떤 사람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이 전쟁에서 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그는 태연하게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지면 앞으로는 당연히 러시아 황제를 모셔야죠."

 

p81

시골에서 살려고 할 때 그 지역 기질은 아주 중요합니다. 공기나 물 혹은 그 이상의 핵심 조건입니다. 그런데도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p90

무릉도원 같은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토피아는 신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애틋한 동경이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p99

국가 법률이 당신의 위태한 순간까지 지켜 주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하지 맙시다. 실제로는 다른 나라 공작원에게 납치된 자국의 무고한 국민을 몇십 년이고 방치하고, 아직도 찾아오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는 법률입니다. 그런 허약한 법률 이전에 당신 개인의 법률을 준비해두어야만 합니다. 아주 불합리한 형태로 당신의 존재 그 자체가 위협을 당할지도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흔들림 없는 집행력도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흉악 범죄뿐 아니라 재해에도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실이 이러해서 실로 유감스럽게도 천국이니 극락이니 하는 가공 세계를 전적으로 동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나 아름다움이 넘치는 이상 공간을 현세에서 찾는 일은 분명 고상합니다만 그 실현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인류는 생물계에서 가장 잔학한 유전자를 이어 받았고, 그에 반작용해야 할 이성은 너무도 무력하기 때문입니다. 유사 이래 전쟁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입니다.

 

p112

당신은 끝없이 도망칠 수 있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이리저리 도망쳐 온 당신에게는 어느 직장이니 직급이니 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뜨뜻미지근한 물에 있다가 밖으로 내던져지자 바로 감기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 때문에 냉정하게 판단할 수 없고, 자신의 처지를 세상의 냉혹함과 도시의 비정함 탓으로 돌리며 자기변호를 꾀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시골 생활이라는 충동적인 도피 행각에서 구원을 찾고자 한 것입니다.

요컨대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이 없다고 개탄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실은 당신이 사랑에 굶주려 있는데 아무도 당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워서일 뿐입니다.

 

p118

시골에서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적절한 왕래를 기대하기란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지역 주민은 마을 전체를 하나의 집, 하나의 가족으로 봄으로써 혹독한 환경에서 비롯된 혹독한 인생을 여러 세대에 걸쳐 헤쳐 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p125

위에 있는 자들만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무리에게 국가를 맡기고 하나에서 열까지 모조리 떠넘겨 버린 국민도 나쁩니다. 작은 악의 무리가 모여 큰 악의 무리를 낳는다는 도식이 절대로 바뀌지 않음을 당신은 깨달을 것입니다. 또한 강자에게 지나치게 복종하여 눈앞의 이익만 얻으려는 국민성을 보고 깜짝 놀랄 것입니다.

 

p134

TV는 공공성과 광고주의 의도 그리고 밝은 면만을 강조하는 오락성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문제를 피합니다. 심각하고 어두운 면을 드러내지 않도록 편집합니다. 전체적으로는 아주 잘못된 인식을 전달합니다. 그 때문에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비극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지도 모릅니다.

 

p145

어쩌면 당신은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감정이 향하는 대로, 본능이 향하는 대로 사는 것이라고 오해하거나 자신의 형편에 맞는 해석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자연이라는 말을 남발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빠져든 자신을 변호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자연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몸에 나쁜 것을 그만두지 못하는 야생동물은 곧 죽음을 통해 사라질 운명에 있습니다. 다른 것들에 의지하려 하거나 주의를 게을리하자마자 소리도 없이 슬며시 몸이 파멸되기 시작합니다.

 

p154

요컨대 당신은 홀로 우뚝 선 한 인간이 될 기회를 깡그리 빼앗긴 채 나이만, 육체만, 생식 기능만 갖춘 성인이 된 것입니다. 아직 사람 몫을 반밖에 못하는 어른으로 사회에 배출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럭저럭 사회인으로 통용되어 온 것은, 일본의 남성 사회 전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왜곡에 만족해 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어느 남자든 그렇다는 핑계로 당신도 허용이 되고 인정을 받아 온 것뿐입니다.

 

p185

시골에서는 내 일은 내 힘으로 한다는 강한 마음가짐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이주하고 나서 도시의 편리함과 비교하며 불평을 해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해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굳이 불편한 곳에서 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읽은 날: 2022. 01. 06.

 

 

토끼가 재미있다고 해서 읽은 건데, 엄청 신랄해서 웃겼다. 목차에 있는 소제목들만 봐도 웃을 수밖에 없음 ㅋㅋㅋ 몇 개 꼽아 보자면

 

 - 경치만 보다간 절벽으로 떨어진다

 -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

 - 사이비 종교인들에게 당신은 봉이다

 - 깡촌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 군침을 흘리며 당신을 노리고 있다

 -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

 -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

 

혼자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환상에 빠져 시골 생활을 동경하며 여차하면 실행에 옮기려는 은퇴 전후의 사람들, 구체적으로 60-70대의 일본 남성들을 혼내는 그런 책인 것 같다. 그리고 읽다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나도 혼난다...... ㅋㅋㅋㅋㅋ

 

예전에 다른 데서 본 내용인데, 귀농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집 안팎 곳곳에서 마주치는 '벌레'라고 한다. 원래도 귀농에 대한 생각이 없었지만 큰 벌레를 보면 놀라서 먼저 죽어버릴지도 모를 쫄보인 나로서는 정말로 귀농에 대한 동경 혹은 미련 비슷한 것 따위 전혀 갖지 않게 되었는데, 이 책은 그런 1차원적인 걸 넘어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면 시골생활을 넘보지 마라'는 경고를 한다.

 

막연하게 '시골에서 평안한 노후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야만 할 책인 것 같다. 일본의 시골과 우리나라의 시골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어디든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하나 다 다른 거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시골살이의 마음가짐을 돌아보기 위한 책이라고 할까.

'강도가 침입했을 때 수제 창으로 공격해서 정신차려보니 적이 발 밑에 쓰러져있더라' 할 정도의 각오를 하지 않으면 시골 생활을 함부로 결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아 이거 사실은 자기계발서인가?

홀로서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호되게 가르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