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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5

사실이라는 것은 기억하지 못해도 존재할 수 있다.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면서 자기는 끝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한테 죄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니 순진하여 좋기는 하나, 남에게 폐를 끼친 사실은 아무리 순진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p233

그들 중 어떤 이는 때때로 나를 보며 고양이 팔자가 아주 편하겠다고 말하지만, 편한 게 좋다면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는가. 바쁘게 살라고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다. 제멋대로 소화하지 못할 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괴롭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불을 확확 피워놓고 덥다고 하는 것과 같다.

 

p296

먼 옛날에 자연은 인간을 평등하게 제조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이라도 태어날 때는 반드시 벌거숭이다. 만약 인간의 본성이 평등에 만족한다면 그냥 벌거숭이인 채로 성장해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벌거숭이 중에 한 사람이 말하길, 이렇게 누구나 같아서는 공부하는 보람이 없다. 뼈를 깎는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나다, 누가 보더라도 나다'라는 점을 돋보이게 하고 싶다. 무언가 남이 보고 '앗!' 하고 놀랄 만한 것을 몸에 걸치고 싶다. 무언가 좋은 게 없을까 10년간 생각하여 이윽고 사루타마를 발명하여 입고, '어때, 놀랍지?' 하고 뻐기며 주위를 걸었다. 이것이 오늘날 차부의 선조다. 

(...)

이윽고 사루타마가 나오자 세상에서 활개치는 것은 차부뿐이다. 차부가 사루타마를 입고 천하의 대로를 내 것인 양 활보하는 것이 아니꼽다고 생각하여, 지기 싫어하는 괴물이 6년간 연구하여 하오리라는 무용지물을 발명했다. 그러자 사루타마 세력은 돌연 쇠퇴하고 하오리 전성시대가 되었다. 채소 장수, 한의사, 옷감 장수는 모두 이 대발명가의 후손이다. 

사루타마 시대, 하오리 시대 다음에 온 것이 하카마 시대다. '이게 뭐야, 하오리 주제에' 하며 짜증을 낸 괴물이 고안한 것으로, 옛날의 무사나 지금의 관리는 모두 이 종족이다.

이처럼 괴물들이 앞을 다투어 다름을 자랑하고 새로움을 경쟁하여 결국에는 제비 꼬리를 본뜬 연미복이라는 기형까지 출현했는데, 한 발 물러나 그 유래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무리하게 엉터리로 우연히 산만하게 일어난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같이 이기고 싶다, 이겨야 한다는 용맹심이 뭉쳐져 다양한 신형이 나온 것으로, '나는 네가 아니야' 하고 떠들며 걷는 대신에 뒤집어쓰고 다니는 것이다.

 

p311

단지 때려보라는 명령은, 때리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다. 때리는 것은 상대방의 문제, 우는 것은내 쪽의 문제다. 우는 것을 처음부터 예상해 놓고 단지 때리라는 명령 속에 제멋대로 우는 것도 포함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극히 실례다.

 

p401

메이테이도 여기에 이르러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단념한 듯 평소와 달리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저씨는 오랜만에 메이테이를 꺾었다고 생각한 듯 아주 기분이 좋다.

메이테이 쪽에서 볼 때 아저씨의 가치는 고집을 부린 만큼 하락한 셈이나, 아저씨로서는 고집을 부린 만큼 메이테이보다 훌륭해진 것이다.

세상에는 이처럼 엉뚱한 일도 가끔 있다. 고집을 끝까지 부려서 이겼다고 생각할 때, 본인의 인물 시세는 크게 하락한다. 이상하게도 완고한 본인은 죽을 때까지 자기가 면목을 세웠다고 생각하므로 이후로 남이 경멸하여 상대해주지 않으리라고는 꿈에도 깨닫지 못한다. 행복하다 생각한다. 이런 행복을 돼지의 행복이라고 말하던가.

 

p405

미치광이도 고립되었을 때는 어디까지나 미치광이로 취급되어 버리나, 단체가 되어 세력을 이루면 건전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p489

"남이 인정하지 않는 것을 하면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죄인이야. 그러니 세상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죄인이 될 수 있네."

 

p521

"개인이 평등하게 강해졌다는 것은 곧 개인이 평등하게 약해진 것이라 할 수 있지. 남이 나를 해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에서 확실히 나는 강해졌으나, 함부로 남의 신상에 손을 댈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옛날보다 약해진 셈이지. 강해진 것은 기쁘지만 약해진 것은 누구나 기쁘지 않으니, 남에게 조금이라도 당하지 않겠다고 강한 점을 끝내 고수하는 동시에 남을 조금이라도 해치려고 남의 약한 부분은 억지로 확대하려 하지."

 

 

 

 

책모임: 2022. 01. 16.

 

 

고양이가 참 서론이 길구나, 말이 많네, 가 첫 번째 감상.

메이테이 같은 친구가 옆에 있다면 얄미워서 한 대 때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서 같이 놀았을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100년도 더 된 소설인데 세상이 많이 변했어도 사람들 알맹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구나 싶다. 

 

뒤로 갈수록 혹시.... 했던 결말이 정말로 마지막에 펼쳐져서 조금 슬펐다. 고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