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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읽기

그냥 하지 말라_송길영

studioH 2022. 2. 22. 15:23

 

 

p14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운명론이거나 정해진 결과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을 선호하고,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모둠살이가 숙명인 인간종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원하는 지점, 각자의 욕망이 합의되는 지점, 바로 그곳에서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p15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모두에게 균등하게 온 것은 아니다."

(...)

아직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다른 이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라면,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나게 돼 있습니다.

 

p78

기억해야 할 변화의 상수 3가지:

당신은 혼자 삽니다.

당신은 오래 삽니다.

당신 없이도 사람들은 잘 삽니다.

 

p100

시스템이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같은 변화 앞에서도 사람마다 수용성이 다릅니다. 서로의 욕망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환경 변화가 상수라면 우리의 욕망은 변수가 되기 때문에 같은 변화라도 그 결과는 각기 다른 양태로 나오는 것입니다.

 

p107

우리 삶은 다양한 변화를 언제나 겪고 있으므로 관찰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p120

변화는 중립적이어서 그 자체가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준비를 해놨으면 기회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될 뿐입니다. 

 

p122

가장 먼저, 본인의 가치관을 의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건 앞으로도 유효하겠죠. 어떤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관행적으로 해왔던 행동을 다 지켜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p123

인간은 군집생활을 통해 적응해온 종입니다. 따라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우리 종이 생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형질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전체가 공존하기 위해 각자에 대한 배려를 키운다는 전제가 현명한 합의를 가능케 할 것입니다.

 

p167

단계별로 증거가 남기 시작하면, 과정의 충실함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 투명성을 기반으로 성실함의 가치가 재정의될 것입니다. 무임승차자가 사라지고 일의 단계가 줄어들겠죠.

 

p168

흔히 밀레니얼은 규칙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약속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창의성을 제어하는 규칙이 아닙니다. 입사할 때 '무엇을 하면 되는데?' '얼마 줄 건데?' '어떻게 줄 건데?' 등에 대해 규칙을 정하고, 그에 맞춰 일한다는 마인드입니다. 단순히 회사 일이니 그만큼만 하겠다는 자세라기보다는, 애초에 회사의 급여체계나 보상체계가 경직돼 있기에 그에 맞게 대응한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더러는 노동강도가 높은데도 구성원이 헌신적으로 임하는 회사도 있으니까요.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일은 규칙을 따지지 않고 한다는 거죠.

 

p170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책상을 화장실에 감추고 담을 타고 넘어가 일탈을 즐기며 스릴을 만끽하던 그때의 분들은 지금 세대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10대 청소년들은 학원을 빠지면 자동으로 결석이 측정되어 부모에게 문자가 날아가거든요. 출결을 시스템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디지털이 없던 시대처럼 구렁이 담 넘듯 은근슬쩍 속여 넘길 수가 없어요.

어릴 때부터 규칙 준수가 내재화된 젊은 세대가 보기에 기성세대의 관행은 무모하고 무례해 보입니다. 한마디로 감수성이 다른 것이죠. 규칙 준수를 꾸준히 해왔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격차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커다란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p178

예전에는 지금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과거를 본 거예요. 지금은 그렇지 않죠. 그러므로 예전 방식을 고수하는 것보다 지금의 새로운 방법과 데이터를 현행화하여 이를 기반으로 좀 더 지능적인 서비스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과거에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오늘도 본다면, 지금으로부터 미래를 볼 수 있으므로 그만큼 우리는 좀 더 현명해질 수 있습니다.

 

p179

투명한 시대에는 의사결정 과정과 근거, 나아가 우리 삶 또한 투명해야 합니다.

투명성의 가장 큰 이슈는 단계별 충실함입니다. 지금까지는 끝이 좋으면 좋은 거였는데, 이제는 모든 단계가 좋아야 해요. 과정이 중요해집니다. 과거에는 과정의 중요성을 주로 '어떻게 효율을 높일지'의 범주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절차적 정당성'의 이슈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심히 해야 하고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p181

안다고 해도, 높아진 사회적 감수성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아는 게 아닙니다. 변화에 적응한 게 아니에요. 

 

p214

온갖 국룰이 생겨난 이유는 타인으로부터 내 평판과 효율을 극대화하고 싶어서입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으니까. 그러나 이 기준이 너무 높습니다. 평범한 게 판교 신혼부부라면 출발부터 불행을 잉태한 거죠. 기준이 높은데 그게 기준이라뇨. 심지어 그걸 모아놨어요. 국어, 영어, 수학을 다 잘할 수는 없잖아요.

무엇보다 평균, 중간을 추구한다는 국룰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서글프게도 중간의 인간은 대체됩니다. AI는 중간을 학습해요. 그런데 우리 인간이 지금 중간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p239

앤드루 포터가 쓴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정성의 정확한 실체는 모르지만 진정성이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으며 '진정성'이 뭐든 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원한다." 사람들이 진정성을 찾고 있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모르는데, 그 와중에 이 사람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안다는 것입니다.

 

p242

우리는 지금 진짜를 찾고 있어요. 즉 의도가 선한 것인가 혹은 평가와 보상을 원하는 것이었는가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채록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언제든 검증되고 대상화될 수 있는 사회로 진입했음을 말해줍니다.

 

p248

진정성과 투명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투명성의 가장 큰 이슈가 단계별 충실함이라면, 진정성의 가장 큰 이슈는 (단계별 충실함은 물론이고) 여러분의 의지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하는지 여부입니다. 즉 투명성이 절차적 완벽함을 묻는 QC에 해당한다면 진정성은 의지의 범주예요. 여러분이 그걸 원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p258

지금 시작하면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p264

앤드루 포터는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이긴다고 말합니다. 즉 진정성은 상대적이므로 몰입의 총량이 큰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에요. 결국 어떤 가치를 끝까지 추구하는, 하드코어한 쪽이 이기는 겁니다.

 

p265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원류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드는 작업이지, 예전처럼 여기 우리 제품이 있다고 알리는 데 몰두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죠.

 

p272

내 업보다 내가 더 오래 살아요. 그만큼 내 업을 현행화하라는 요구가 더 커질 것이므로 성인에게도 현행화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재사회화입니다. 이제는 젊은 세대만 가르치는 교육의 영역을 확장해 성인기에 들어선 이들이 변화된 생산방법과 사회구조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시스템과 교육기관이 필요해질 겁니다. 

 

p277

업에서든 개인생활에서든 인간은 상호작용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므로, 함께 성장하려는 노력도 평생 계속되어야 합니다.

 

 

 

 

책모임: 2022. 1. 29.

 

 

강연하듯 쓰여 있어 읽기에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읽으면서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이 자꾸 밀려와서 그걸 견디느라 힘들었다. 빨리 뭐라도 해서 그걸 SNS에 올리고 남들이 알게 해서 나의 삶의 증거와 증인을 만들어 두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조급함. 

꾸준히 기록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하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도 있어서 더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증거를 남기지 않은 채 무언가 해온 일들이 다 없어지게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불안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SNS를 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방식으로 내 삶의 흔적들을 남기고 또 보존해왔던 것 같아서 그냥 금방 안심했다. 하루쯤 지나니까 다시 원래의 평안한 나로 돌아왔다는 소리 ㅋㅋㅋㅋ

 

밀레니얼 세대에 관한 부분에서는 「90년생이 온다」가 떠올라서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 편이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적당히 봐주면서 살아온 어른들과, 학원에 지각만 해도 부모님께 알림이 가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온 젊은이들이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부분이 매우 납득가능이었달까. (솔직히 「90년생이 온다」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고 후반부가 특히 억지스러워서 좋아하지도 않고 절대 추천하지도 않는다.)

 

아무튼 뭐가 됐든 그냥 하지 말자.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