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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말하는 사람의 심정과 처지에서 듣는 것이다. 듣고 나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주고, 그것을 생색내지 않는 것이다.

 

p11

나도 아들의 말을 그렇게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들어주기보다는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아들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기 일쑤다. 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비의 마음이라 여기지만, 사실 내 입장이다.

 

p27

남의 고통과 어려움을 대신할 수 없듯이, 위로도 남이 대신 해줄 수 없다. 자기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자기 안에서 스스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타인은 다만 그것을 도울 뿐이다.

 

p31

회사 다닐 적 '헬리콥터 뷰'를 가지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회장이나 사장의 눈높이에서 보라는 말이다. 그래야 문제점이 보이고 의사결정자의 마음에 드는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윗사람은 배려의 대상은 아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것, 그러기 위해 스스로 낮아지는 것, 때로는 지는 것을 감수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배려다.

 

p43

반대하면서도 존중을 잃지 않는 자세야말로 성숙한 어른의 내공일 것이다.

 

p48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해주자. '무엇에 관해 말해보라'고 하지 않고, '네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고 물어야 한다.

 

p51

나는 얼굴보다 말이 더 그 사람의 인격에 가깝다고 믿는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면 얼굴을 볼 게 아니라 말을 들어봐야 한다.

 

p64

힘있는 사람은 마음껏 지시하거나 통제하고, 힘없는 사람은 고분고분 들어야 하는 사회, 힘있는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골라서 할 수 있고, 힘없는 사람은 모든 걸 이실직고해야 하거나 말해야 하는 내용을 강요받는 사회. 그런 사회는 공정하지 못하다.

 

p87

어휘력이 빈약하면 말이 빈곤해진다. 가진 것과 가진 것을 보여주는 것은 별개다. 어휘력이 부족하면 가진 게 많아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니 없어 보이다.

 

p100

청와대에서 연설문을 쓸 때 이전에 썼던 걸 참고하곤 했다. 그것처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과 다른 걸 쓰기 위해서였다.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말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 틀을 깨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틀을 멋지게 깬 말은 듣는 귀를 끌어당긴다.

 

p103

끼어들고 싶은 욕구나 반론하고 싶은 충동, 변론하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고 말을 삼킬 필요가 있다. 참고 듣는 것으로, 상대가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더 큰 호감과 공감을 얻어내기도 한다.

 

p111

누군가에게는 삶의 전부가 되는 세상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을까. 음식점, 편의점, 백화점 등 무수히 많은 업종의 세계가 있을 것이고, 은행원, 건축가, 운전사 등 직업의 세계, 등산, 바둑, 낚시와 같은 취미의 세계도 있을 테다. 이 세상에 수백, 수천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그 각각이 하나의 우주인 셈이다. 그 안에 들어가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세계가 공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살면서 몇 안 되는 세계를 체험한다. 나머지는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편견과 오해, 선입견, 고정관념이 만들어진다.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아는 길은 관찰뿐이다.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거기에 오묘한 세계가 있다.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고 파면 팔수록 더 깊이가 느껴지는 또 다른 세상 말이다.

 

p154

말은 씨가 된다. 밭이 아무리 기름져도 씨를 뿌리지 않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좋은 씨앗을 뿌리며 좋은 열매를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뿌린 대로 거둔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자신의, 혹은 타인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말이 다짐이 되고 언약이 되어 꿈을 현실로 만든다.

 

p158

말은 내가 하는 것이니 내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말은 하지 않을 때까지만 내 것이다. 내뱉은 순간, 그 말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 말의 소유권은 들은 사람에게 옮아간다.

 

p240

흔히 하는 말로 '생각은 자유'다. 그러나 그것이 말로 나오는 순간 이미 나의 것이 아니다. 말을 듣는 엿장수 마음대로다. 엿장수는 마음에 들면 더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야박하게 가위질할 수도 있다. 말은 듣는 사람이 주도권을 쥔다. 어떤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p264

말하기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다. 듣기가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말하기는 내 것을 남에게 베푸는 일이다. 또한 말하기는 소비가 아니라 생산이다. 내 말은 내 것이다. 내가 나눠주는 일이 말하기다. 내가 생산자가 된다.

 

 

 

읽은 날: 2023. 01. 02. ~ 2023. 01. 07.

 

 

시간이 꽤 지나고 쓰려니 가물...

 

새해를 맞아 리디셀렉트를 다시 구독하면서 책 목록을 보던 중, 그 당시 나를 매우 빡치게 하는 사람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어른'이지만 '어른답게' 말하지 못하는 누군가에 의해 마음에 크게 상처를 받고 화풀이하는 기분으로 책을 골랐다. 나는 '그런 어른'은 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어른답다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그저 오래 살았다고 어른은 아닌 것 같고(물론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이 어른의 기본 조건이지만), '이 사람을 존경할 만하다'는 마음이 들어야 하는 것 같다.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은 닮고 싶은 점이 있어 배우고 싶고 따르고 싶어야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어른답게 말한다는 건 아마 '저 사람 말은 들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려나.

 

"내뱉은 순간, 그 말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 말의 소유권은 들은 사람에게 옮아간다."

 

말은 많이 할 것도 아니고, 아끼기만 할 것도 아니다.

'어른'이라는 이름이 무겁지만 그저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흘러가고 의지와 상관없이 나이를 먹게 된다.

듣는 사람을 생각하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신경써서 나이만 어른이 아니라 마음도 말도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