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5 조그마한 플라스틱 렌즈를 눈에 살살 집어넣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가방을 가지러 되돌아가서는 안 되는 때가 있고 그래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하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p141 "자넨 자네가 보는 걸 보기 때문에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없어. 자넨 자네가 아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을 알 수 없어. 내가 보고 내가 아는 것은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에 보태질 수가 없어. 왜냐하면 같은 게 아니니까. 그건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을 대신할 수도 없어. 왜냐하면 그건 자네 자신을 대신하는게 될 테니까." (중략) "자네가 어떤 식으로든 보거나 듣거나 경험하는 것은 모두 자네하고 상관있어. 자넨 우주를 인식함으로써..
p231 "여기 말이오." 정신 멀쩡한 웡코가 말했다. "우리는 지금 정신병원 바깥에 있는 거라오." 그는 다시 거친 벽돌, 산뜻한 마감재 그리고 물받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문을 지나면......" 그는 그들이 처음 들어왔던 문을 가리켰다.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환자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예쁘게 인테리어를 했지만, 사실 다 구제 불능이라 별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오. 나는 절대 저 속으로 들어가지 않지.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느끼면, 요즘은 물론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그냥 문에 달려 있는 안내문을 읽으면, 금세 마음이 약해져서 또 못 들어가곤 해요." "저 안내문 말인가요?" 펜처치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뭐라고 지시문들이 쓰여 있는 파란 명판을 가리켰다. "그래..
p49 "SEP라는 건, 우리가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는, 아니 우리 뇌가 못 보게 하는 광경이야. 왜냐하면 다른 사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SEP의 뜻이 그거야. '다른 사람의 문제'. 뇌가 그 부분을 편집해 잘라내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맹점 같은 거라고.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는 경우에는, 똑바로 쳐다보면 보이지 않아. 유일한 희망은 곁눈질로 어쩌다 재수좋게 힐끗 보게 되는 거지." p60 '다른 사람의 문제' 자장은 훨씬 간단하고 효율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손전등 배터리 하나로 백 년 넘게 작동시킬수 있었다. 이 기술은, 보고 싶지 않은 것, 예기치 못한 것, 그리고 해명할 수 없는 것은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타고난 성향에 의존하고 있었다. 에프라팍스가 산을 분홍색으로 칠한 뒤에..
p109 사실, 오글라룬 사람들 중에서 그 나무를 떠나는 이는 가증스러운 범죄를 저질러서 내동댕이쳐진 사람들뿐이다. 그 범죄란, 다른 나무에서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혹은 다른 나무들은 진짜로 오글라 호두를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환영에 불과할까 하고 궁금해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가 굉장히 기이하게 보일지 몰라도, 은하계의 모든 생명체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와 같은 죄를 저지른다. 바로 그 때문에 '모든 관점 보텍스'가 그처럼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보텍스 안에 넣어지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무한한 창조물 전체를 한순간에 다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 어딘가에 아주 작은 표시가, 즉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작은 점 위에 다시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작은 점이 있는데, 거기에는 '너는 여..
읽은 날: 2021.03.03.~2021.03.06. / 2021.03.29.~2021.03.30. 책모임: 2021.03.07. 책은 아주 조금밖에 안 읽었지만(아직) 서문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 이분 말이 엄청 많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영국 감성인가' 하는 것을 느꼈다. 멋진징조들을 읽을때 느꼈던 것과 거의 유사한 그 어떤 특유의 감성이 있었달까... 시리즈 전체를 다 읽는게 올해의 책모임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아마 2권 읽기 전에 책은 마저 읽지 싶다. --- 2021.03.30.에 덧붙임 역시! 2권을 읽을 때가 되니 다 읽었도다! 영화를 먼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그래도 영화를 봤으니 끝까지 읽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그담에 들었다. 그리고 읽다보니 재미있네요 ..
p18 내가 너에게 양해를 구하듯이 너 역시 나에게 양해를 구한다는 것이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전제였다. p26 하지만 나는 될 수 있는 한 오래, 가능한 치열하게 세상과 불화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그 불안한 긴장감 안에서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이 세상에 태어나 타인들의 호의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한다. 그리하여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때문에 계속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어떤 삶을 살든 생의 진실이 잠깐 얼굴을 비추는 그 순간들을 확인하며 가고 싶다. p92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내가 나의 신념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다면 비록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누구나 결국은 그쪽에 서게 될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p100 ..
p53 시간은 직선처럼 곧게 뻗은 것이 아니라 미로처럼 뒤얽혀 있다. 그래서 적절한 곳에서 벽에 바싹 붙어 서면 발걸음 소리와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저 반대편에서 자기 자신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p368 자신의 능력 밖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자신이 틀렸다고 말하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사람들을 실망시킬까봐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p407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실을 다시 상기한다. 인간은 앞만 볼 수 있다고. 자신의 뒷모습도 볼 수 없고, 얼굴조차 볼 수 없다고. 읽은 날: 2021.01.16~2021.01.17. 책모임: 2021.01.24. 북유럽에 대해서라면 핀란드만 조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다른 나라들도 알게 ..
p43 지금은 최악이 아니다. 언제든 더 나쁜 게 올 수 있다. 이 문장을 머릿속에 현수막처럼 띄워두고 몇 년을 살았다. 아니, 언제든 더 나쁜 게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p46 마감에 늦어도 어떻게든 책이 만들어지긴한다. 대신 마감이 늦을수록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피로도가 오르고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 축구에서 안 좋은 패스를 주면 패스를 받는 선수가 더 뛰어야 하는 것과 같다. 나는 할 수 있는한 좋은 패스를 주는 사람이고 싶다. 해야 하는 일을 최대한 잘 하고 싶은 것뿐이다. p59 내 삶의 관심사 중 하나는 조직과 개인의 필연적 불화다. 개인이 꿈을 이루려면 조직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있다. 소방수가 되고 싶은데 자기 차를 개조해서 불을 끄고 다닐 순 없다. 어떤 ..
p105 태양은 약속을 지켰다. 모두가 안도했다. 그림자 없이 견딘 사십 일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p116 "죽은 모습이 마치 살아 있을 때 같아. 너무 가난해서 죽음조차 그의 입을 다물게 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야. 죽은 후에도 이 빠진 극빈자처럼 보여." p418 "(중략) 요즘에도 우리를 깎아내리고 비하하는 사람이 엄청 많아요. 비다 고원은 모두가 같이 살아도 될 만큼 넓은데, 도대체 왜들 그러는지. 함께 살아가는 걸 왜 그렇게 힘들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니까. 하지만 그게 현실이야. 나는 날마다 우리 주님께 기도를 해요. 하지만 원한과 질투와 비열함을 매일매일 볼 수 있어." p492 인생은 선택의 총합이다. 아무것도 우연에 맡기지 말고 모든 걸 예측한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는 받아들인다. 자신이..
최근 한달의 시간 동안 내 미래의 방향을 조금 바꿀 결정을 내렸다. 나 자신에 대한 불안, 불신과 약간의 뻔뻔함과의 대결에서 일단 뻔뻔함의 편을 들었는데 미래의 내가 부디 현재의 나에게 고마워하게 되기를 바란다. 현실은 비록 이름모를 파충류의 군살 같을지라도 용머리나 뱀꼬리 꿈은 꿔도 되잖아요? p.45 요는,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어떤 뉘앙스를 전달할 가능성이 높은지는 아무리 훈련해도 지나치지 않다. 글을 퇴고하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일로 지적해도 사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더욱 주의해서 표현을 골라야 한다. 어휘력을 키운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진심이 담겨야 진정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면 유사어,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