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40 많은 사람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영원하다고 믿고 산다. 엄청나게 끔찍한 일, 또 엄청나게 운이 좋은 일 같은 건 늘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나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종의 거짓된 안정감 속에서 지낸다. 엄청난 성공을 누릴 기회는 기꺼이 포기했으니 신과 악마, 둘 다와 합의를 이뤘다고 착각한다. 엄청난 부를 누리지도 못하겠지만 험난한 재판에 시달릴 일도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바로 그때쯤 그런 합의가 우리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바로 눈앞에서 세상이 뒤바뀌고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그래서 더 위험해진다. 어둠은 칠흑 같은 암흑으로 변한다. 새하얀 눈과 같은 순백은 잿빛으로 변한다. 눈동자에서 죽음을 볼 때 심장을 ..
p16 이제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매달리는 걸 그만두고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일을 생각할 때다. 완벽한 일터란 없다. 따라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보다 근원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 있다. 결국 개인의 실천 습관이 우리 일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정확히 꼬집어 말하자면, 아이디어의 실현을 좌우하는 요소는 올바른 루틴의 보유 여부,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역량, 그리고 업무 습관을 체계적으로 최적화하는 능력이다. p74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걷기 같은 매우 자동적인 행위를 할 때만 멀티태스킹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의식적인 집중을 요하는 행위인 경우, 실제 이루어지는 현상은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요구 사항을 놓고 마음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작업 전환' 과정일 뿐이다. 마치 두 가지 이상의 ..
p78 죽을 만큼 힘든 사점을 넘어 계속 걸으면, 결국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조금 더 걸을 수 있다. p114 내가 걷기를 통해 내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오랫동안 연기하고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어느 날에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또 어떤 날에는 나 자신에게 너무도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결과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작업해나가는 것이다.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작업하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p149 내 컨디션이 좋고 여러 조건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을 때 비로소 걷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내가 정말 바닥을 기는 최악의 상황이 왔을 때도 ..
p25 항상 '인생은 레벨 업이 아니라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라고 믿는데, 옛날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레벨 업한 버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옛날의 나로부터 지금의 나까지를 모두 다 품은 내가 더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는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더 넓어진 나야말로 더 나아진 나일지도 모른다. p85 아무리 이타적이고 겸손한 사람이라 해도 두뇌의 저 깊숙한 곳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둔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객관화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해도 내가 한 몫이 더 커 보인다. 나는 내가 한 부분의 모든 디테일과 그에 들인 시간과 매 순간의 판단 과정을 전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이 한 부분에 대해서 더 열심히 보려는 노력을 해야만 비로소 형평에 맞는다. p..
p84 삶은 집에 깃들지 않는다. 저녁에 들어가서 눕는 집이 지금의 내 삶에 하루하루 스며들어 간다. p91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다다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변화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송두리째 곤두박질치는 재난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막상 정말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 심란함은 해가 쨍쨍한 날 장우산을 들고나온 사람 같은 무색함으로 바뀌었다.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들고 걸어가다, 나처럼 우산을 든 다른 사람과 마주치면 '꼭 비 올 것처럼 그러더니, 그렇죠?' 하고 멋쩍게 웃기도 하면서. p101 삶의 장면들은 결코 책장 넘기듯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끝난 줄 알았던 기다란 문장이 다음 장에도 몇 줄씩 꾸역꾸역 이어져서 당황하는 것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진짜 시작이다. ..
p55 조그마한 플라스틱 렌즈를 눈에 살살 집어넣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가방을 가지러 되돌아가서는 안 되는 때가 있고 그래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하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p141 "자넨 자네가 보는 걸 보기 때문에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없어. 자넨 자네가 아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을 알 수 없어. 내가 보고 내가 아는 것은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에 보태질 수가 없어. 왜냐하면 같은 게 아니니까. 그건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을 대신할 수도 없어. 왜냐하면 그건 자네 자신을 대신하는게 될 테니까." (중략) "자네가 어떤 식으로든 보거나 듣거나 경험하는 것은 모두 자네하고 상관있어. 자넨 우주를 인식함으로써..
p231 "여기 말이오." 정신 멀쩡한 웡코가 말했다. "우리는 지금 정신병원 바깥에 있는 거라오." 그는 다시 거친 벽돌, 산뜻한 마감재 그리고 물받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문을 지나면......" 그는 그들이 처음 들어왔던 문을 가리켰다.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환자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예쁘게 인테리어를 했지만, 사실 다 구제 불능이라 별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오. 나는 절대 저 속으로 들어가지 않지.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느끼면, 요즘은 물론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그냥 문에 달려 있는 안내문을 읽으면, 금세 마음이 약해져서 또 못 들어가곤 해요." "저 안내문 말인가요?" 펜처치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뭐라고 지시문들이 쓰여 있는 파란 명판을 가리켰다. "그래..
p49 "SEP라는 건, 우리가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는, 아니 우리 뇌가 못 보게 하는 광경이야. 왜냐하면 다른 사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SEP의 뜻이 그거야. '다른 사람의 문제'. 뇌가 그 부분을 편집해 잘라내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맹점 같은 거라고.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는 경우에는, 똑바로 쳐다보면 보이지 않아. 유일한 희망은 곁눈질로 어쩌다 재수좋게 힐끗 보게 되는 거지." p60 '다른 사람의 문제' 자장은 훨씬 간단하고 효율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손전등 배터리 하나로 백 년 넘게 작동시킬수 있었다. 이 기술은, 보고 싶지 않은 것, 예기치 못한 것, 그리고 해명할 수 없는 것은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타고난 성향에 의존하고 있었다. 에프라팍스가 산을 분홍색으로 칠한 뒤에..
p109 사실, 오글라룬 사람들 중에서 그 나무를 떠나는 이는 가증스러운 범죄를 저질러서 내동댕이쳐진 사람들뿐이다. 그 범죄란, 다른 나무에서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혹은 다른 나무들은 진짜로 오글라 호두를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환영에 불과할까 하고 궁금해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가 굉장히 기이하게 보일지 몰라도, 은하계의 모든 생명체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와 같은 죄를 저지른다. 바로 그 때문에 '모든 관점 보텍스'가 그처럼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보텍스 안에 넣어지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무한한 창조물 전체를 한순간에 다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 어딘가에 아주 작은 표시가, 즉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작은 점 위에 다시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작은 점이 있는데, 거기에는 '너는 여..
p22 지나간 시간을 덮어두거나, 가끔 사진을 꺼내 보고 추억하기보다는 내가 느낀 감정들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늘 느끼고 싶고, 확인하고 싶다. 따라서 를 보는 것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연결하는 고리 같은 거다. 물론, 굳이 연결하고 살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먹고살다 보니...' 어쩌고 같은 핑계나, 나이가 몇인데, 혹은 어른이란 말로 내가 느낀 소중했던 순간과 기억을 뇌 저 구석에 처박아 넣고 싶지 않다. 그때 그 순간,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너무 쉽게 휘발되니 우리는 매우 유의해야 한다. p27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모토로 사는 사람이라면 주변이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고요해야 하는 법이다. 늘 똑같은, 변함없는 하루를 바란다면 닌자처럼 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