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27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나갔을 때 "낯을 가립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돌연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것이 마치 병인 듯, 도저히 손쓸 방법이 없는 일처럼 말하는 스스로에게 약간 화가 났다. 그때까지 상대에게 사랑받고 싶다,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소통하기를 포기했다. 소통에 실패해 버리면 거기에서 인간관계를 배우고 성장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그걸 상대에게 "낯을 가려서......."라고 마치 피해자인 양 말하는 것은 "나는 소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인간이니 그쪽에서 조심하쇼."라고 대놓고 낯부끄러운 선언을 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몇 년 전부터 낯을 가린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마음의 문을 늘 활짝 열어 두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아한다고 알리고자..
p39 학력저하의 위기적 요소 중 하나는 앞서 설명했듯이, 아이들이 스스로 학력이 없다거나 영어단어를 모른다거나 논리적으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것을 조금은 자각하고 있어도 '그 사실을 특별히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 가지밖에 없다. 그들은 '자기가 모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p53 문제는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사는 사람'이라는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사는 사람입니다"하고 자신을 설정하면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어엿한 한 사람의 선수로 시장에 참가하도록 허락된다. 이 경험이 가져다주는 짜릿한 쾌감은 매우 중요하다. 어린 아이가 ..
p22 나는 사람들이 '국가'나 '국익'이라는 '큰 이야기'로 회수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영화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큰 이야기'(오른쪽이든 왼쪽이든)에 맞서 그 이야기를 상대화할 다양한 '작은 이야기'를 계속 내놓는 것이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그 자세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기서 새삼 선언해두고 싶다. p23 작품에서 만든 이의 어떤 메시지를 수신해 그것을 확산하는 일이 자기네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정말이지 성가시다. 본인들은 대단히 진지하며 어쩌면 경향적으로는 나와 비슷한 사상과 신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작품을 메시지를 옮겨 나르는 그릇으로만 보는 태도에서는 작품을 매개로 풍성한 커뮤니케이션이 확산되는 일은 아마 바..
클라라: 박상원, 호두까기 왕자: 이현준, 드로셀마이어: 바이르 타이비노프, 생쥐 왕: 알렉산드르 세이트칼리예프, 어린 클라라: 이예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21. 12. 22. with 토끼 꼬꼬마 초딩시절 호두까기 인형 동화책이 좋아서 계속 읽고 읽고 그 책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발레 공연은 이제야 처음 보았다. 사실 작년에 예매했었으나 코로나로 공연이 결국 취소되었어서 엄청 아쉬웠는데 올해는 볼 수있어서 다행이었다. 무대도 예쁘고 의상도 예쁘고, 뭔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느낌이었는데, 1막 마지막 눈송이왈츠가 너무 예뻐서 제일 기억에 남는다. 진짜 눈송이 같았다고!!! 너무너무 예뻤다고!!! 어흑 2막 꽃의 왈츠 역시 너무 예쁘고 좋았다. 익숙한 그 음악..! 그리고 아라비아 춤에..
유럽 빈티지 장난감展 서울웨이브아트센터 2021. 11. 20. with 토끼 빨간 리본을 머리에 매고 금색 리본을 몸에 두른 작은 공룡 인형이 매표소에서 반겨주는데 너무 귀여웠다. 곧 크리스마스구나, 하는 느낌! 남들은 모르는 장난감들의 나라로 몰래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으로 책장을 밀어 들어가는 입구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손때 탄 모형 장난감, 인형들, 로봇들 아무튼 온갖 장난감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이 장난감들은 그 동안 어떤 아이들의 손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 어릴 때 좋아했었던 로봇도 생각났다. 생김새는 전시에서 본 것들과 비슷했지만 깜장색 몸통 가운데에 화면이 나오는 거였는데, 요즘 것 같은 그런 화면 아니고.. 전원을 켜면 불이 들어오고 안쪽에 돌아가는 필름..
한참 안 들어왔더니 개별로 정리하기가 힘들다(=귀찮다) ㅎ 게으른 자의 말로... 그럴땐 그냥 한 장에 다 쓰는 거지! 게르하르트 리히터: 4900가지 색채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 21.07.11. with 토끼 - 알록달록 컬러칩!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디큐브아트센터 21.09.05. with 토끼 - 코어가 좋구만.... 그리고 생각보다 대사가 거칠어서 놀랐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마이아트뮤지엄 21.09.18. with 토끼 - 그림 속 장소에 같이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 바람에 살랑거리는 커튼 큰 집과 많은 돈이 있다면 집에 꼭 걸어놓고 싶다.. 오리엔탈의 빛: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 @아트스페이스 선 21.09.18. with 토끼 - 귀여운 호박들.. 에릭 요한슨 사진..
요시고 사진전: 따뜻한 휴일의 기록 2021. 08. 22. 그라운드시소 서촌 with 토끼 이것으로 그라운드시소 세 군데 전시장을 모두 다녀왔도다! 전시기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8월말까지는 전시장 내 사진촬영 금지라고 해서 얼른 다녀왔다. 덕분에 쾌적하게 잘 보고 왔다 ㅋㅋㅋ 그래도 사람은 많았지만 ㅎ 카메라 없이 눈으로만 보는 전시 꽤 좋았다. 음 요시고씨 요시 고 아니고 요 시고 였어.. (아무말) 사진들 다 좋았다. 처음에 건축사진들도 좋았고 마지막에 관광사진들 특히 좋았고. 사진들에서 뭔가 비례와 리듬감 같은게 확실하다 싶었는데 그래픽디자인 전공이라니까 그냥 왠지 납득.. (?? 사진을 찍는다는 건 참 멋있는 일인 것 같다. 사진 조아...!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준단다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궁금하다 내 꼬리를 잘라 준 주인은 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 가만히 꼬리뼈를 만져 본다 나는 꼬리를 잃고 사람의 무엇을 얻었나 거짓말할 때의 표정 같은 거 개보다 훨씬 길게 슬픔과 싸워야 할 시간 같은 거 개였을 때 나는 이것을 원했을까 사람이 된 나는 궁금하다 지평선 아래로 지는 붉은 태양과 그 자리에 떠오르는 은하수 양 떼를 몰고 초원을 달리던 바람의 속도를 잊고 또 고비 사막의 밤을 잊고 그 밤보다 더 외로운 인생을 정말 바랐을까 꼬리가 있던 흔적을 더듬으며 모래언덕에 뒹굴고 있을 나의 꼬리를 생각한다 꼬리를 자른 주인의 슬픈 축복으로 나는 적어도 허무를 얻었으나 내 개의 꼬리는 ..
KOREAN EYE 2020 CREATIVITY AND DAYDREAM 롯데월드몰 지하1층 P/O/S/T 2021. 07. 24. with 토끼 재미있었던 작품도 있었고, 마음에 드는 작품도 있었는데(물론 물음표가 가득해지는 것과 뭐랄까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그닥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전시였다. 음 길 잃고 동선을 역주행 한 것은 비밀...안 비밀...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점자와 기타코드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거기서 어떤 규칙을 만들어 점자 단어로 기타연주곡을 만든 거였다. 뭔가 관계 없어 보이는 것들에서 연결점을 찾아내는 거 좋아함 ㅋㅋㅋ 그리고 도자기 접시에 머리카락으로 그림 그린 작품들도 있었는데 그냥 볼때는 오 멋있다 섬세하네 이랬지만, 재료의 성질을 보여주는 작품(끝..
p24 성인이 되어 두려움을 느끼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별로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겁이 날 일 자체가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은 어떻게든 해결될 터이고 사소한 일에 몰두해봤자 부질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젊은 시절 끊임없는 집착과 두려움의 연속을 벗어나 넓은 시야를 갖추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이듦의 장점 중 하나다. 두려움에서 해방돼 나쁜 점이 하나 있다면 정말로 두려움을 느꼈을 때 이젠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철저히 체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읽은 날: 2021. 07. 10. 책모임: 2021. 08. 01. 파묻힌 거짓말의 다음 이야기! 음 시작부터 약간 충격적이었달까 그분이 그렇게 죽었을 줄은...!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두근두근 이런 느낌은 아니고 그래서 누군데?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