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20 "잘 들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공포에 떨고 있어." p314 "미국에는 강꼬구징韓國人이나 조센징朝鮮人이라는 게 없었어. 왜 내가 남한 사람 아니면 북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거야? 이건 말도 안 돼! 난 시애틀에서 태어났어. 우리 부모님은 조선이 분단되지 않았을 때 미국으로 갔고." p361 "일본은 절대 변하지 않아. 외국인을 절대 ..
p11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p20 선자가 열세 살이 되던 겨울날 훈이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훈이의 장례식에서 양진과 선자는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북받쳐서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젊은 미망인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일상으로 돌아가 여느 때처럼 일을 하기 시작했다. p105 "네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와 고통을 함께 나누지 않을 수 없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단순히 주님을 흠모하거나 두려워하고, 주님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감정을 알아야 해. 주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실 게 분명하니까. 우리는 주님의 고뇌를 이해해야 하지.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고난을 겪으시네. 주님은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으시지. 그걸 아는 게 우리..
p127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나갔을 때 "낯을 가립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돌연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것이 마치 병인 듯, 도저히 손쓸 방법이 없는 일처럼 말하는 스스로에게 약간 화가 났다. 그때까지 상대에게 사랑받고 싶다,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소통하기를 포기했다. 소통에 실패해 버리면 거기에서 인간관계를 배우고 성장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그걸 상대에게 "낯을 가려서......."라고 마치 피해자인 양 말하는 것은 "나는 소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인간이니 그쪽에서 조심하쇼."라고 대놓고 낯부끄러운 선언을 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몇 년 전부터 낯을 가린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마음의 문을 늘 활짝 열어 두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아한다고 알리고자..
p39 학력저하의 위기적 요소 중 하나는 앞서 설명했듯이, 아이들이 스스로 학력이 없다거나 영어단어를 모른다거나 논리적으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것을 조금은 자각하고 있어도 '그 사실을 특별히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 가지밖에 없다. 그들은 '자기가 모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p53 문제는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사는 사람'이라는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사는 사람입니다"하고 자신을 설정하면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어엿한 한 사람의 선수로 시장에 참가하도록 허락된다. 이 경험이 가져다주는 짜릿한 쾌감은 매우 중요하다. 어린 아이가 ..
p18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 거야." 그러자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p28 어린이의 '부풀리기'는 하나의 선언이다. '여기까지 자라겠다'고 하는 선언. p41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
p235 우리는 흔히 성공에 대해 한 가지 요소만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중요한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들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p357 나의 주된 두 가지 결론은, 기술이란 어느 영웅의 개별적인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누적된 행동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 그리고 기술이란 대개 어떤 필요를 미리 내다보고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된 이후에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는 것이다. p360 타이핑된 문서라면 거의 다 그렇듯이 이 책도 역시 '쿼티QWERTY 자판(윗줄 왼쪽의 여섯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타이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 같은 자판 배열은 1873년에 역공학의 산물로 태어났다. 즉, 온갖 수단을 다발휘하여 타..
p33 고빈다가 말하였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어, 싯다르타, 그리고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이 있네. 우리는 쳇바퀴처럼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위를 향하여 올라가고 있는 거야. 그 바퀴는 둥근 원이 아니라 나선형이고, 우리는 이미 많은 단계들을 거쳐온 거야.」 p56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 대하여서만, 오로지 나에 대해서만, 저는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p63 의의와 본질은 사물들의 배후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들 속에, 삼라만상 속에 있었던 것이다. p153 바주데바는 매우 주의 깊게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는 싯다르타가 이야기하는 내력..
p18 내가 너에게 양해를 구하듯이 너 역시 나에게 양해를 구한다는 것이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전제였다. p26 하지만 나는 될 수 있는 한 오래, 가능한 치열하게 세상과 불화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그 불안한 긴장감 안에서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이 세상에 태어나 타인들의 호의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한다. 그리하여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때문에 계속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어떤 삶을 살든 생의 진실이 잠깐 얼굴을 비추는 그 순간들을 확인하며 가고 싶다. p92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내가 나의 신념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다면 비록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누구나 결국은 그쪽에 서게 될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p100 ..
p43 지금은 최악이 아니다. 언제든 더 나쁜 게 올 수 있다. 이 문장을 머릿속에 현수막처럼 띄워두고 몇 년을 살았다. 아니, 언제든 더 나쁜 게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p46 마감에 늦어도 어떻게든 책이 만들어지긴한다. 대신 마감이 늦을수록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피로도가 오르고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 축구에서 안 좋은 패스를 주면 패스를 받는 선수가 더 뛰어야 하는 것과 같다. 나는 할 수 있는한 좋은 패스를 주는 사람이고 싶다. 해야 하는 일을 최대한 잘 하고 싶은 것뿐이다. p59 내 삶의 관심사 중 하나는 조직과 개인의 필연적 불화다. 개인이 꿈을 이루려면 조직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있다. 소방수가 되고 싶은데 자기 차를 개조해서 불을 끄고 다닐 순 없다. 어떤 ..
p60 고생이나 고통이라는 건, 그게 타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한, 인간으로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일반적인 종류의 고생이나 고통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심한 편이다. p136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p190 하트는 어떤 고양이에게도 재주를 가르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 근거는,..